
20일 방송되는 KBS '동행' 537회에서는 순원이와 태권 브이 아빠가 그려진다.
√ 암과 싸우는 '태권 브이 우리 아빠'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브이~♬" 아침부터 만화 영화 '로봇 태권 브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한 낡은 주택가 골목길. 오늘도 다섯 살 순원이와 아빠 혁배 씨는 부자의 주제곡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빠가 보여줬던 만화 영화 속 주인공 태권 브이는 순원이의 영웅. 씩씩하고 용감한 태권 브이가 암과 5년째 싸우고 있는 아빠를 지켜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아빠는 순원이가 태어나 백일도 되기 전, 직장암 4기를 진단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직장과 대장을 절제 후 인공항문 주머니를 달아야 했던 아빠. 지난 5년 동안 100번에 가까운 항암 치료를 오직 가족을 생각하며 버텨왔다. 하지만 골반에 이어 올해 2월에는 암이 폐까지 전이된 상황. 제발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랐던 아빠는 또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앞으로의 치료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보니 1회에 300만 원인 비급여 항암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아빠. 항암 치료를 멈춘 10개월 동안 하루하루 심해지는 통증을 마약성 진통제로 버틸 뿐이다.
√ 인생 최고의 순간에 찾아온 불행
고등학교 졸업 후, 요리사가 되면 적어도 밥은 굶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중국 요리를 처음 시작한 아빠. 비록 내 이름으로 된 식당은 없었지만, 열심히 일하며 가정도 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후 필리핀에서 온 엄마 마리아 씨를 성당에서 만나 재혼한 아빠.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열고 늦둥이 순원이까지 태어나며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식당 문을 연 지 3개월 만에 암 투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됐고 월세가 밀리고 보증금까지 바닥나자,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갚아야 할 빚과 생계를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쉴 수 없었다. 항암 치료의 통증을 참아가며 국비 지원으로 굴착기, 지게차 등 건설 자격증을 4개나 취득했지만 암 환자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공장이며 마트며 틈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엄마가 안쓰럽고 미안한 아빠. 엄마는 아빠의 항암 치료를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눈물만 흘릴 뿐이다.
√ 엄마는 약손, 순원이는 보약. 아빠가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항상 "엄마는 약손, 순원이는 보약"이라고 말할 만큼 아빠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건 바로 가족. 아빠 약도 챙겨 주고, 힘들어 보일 때면 안마도 해주는 순원이는 통증도 잊게 할 만큼 사랑스럽고 감사한 존재다. 아빠가 늘 아팠던 탓에 순원이의 세상은 집과 어린이집이 전부.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는 친구들이 부럽긴 하지만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만큼 철이 들었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아빠를 따라 집에서 머리를 깎는 것도, 스케치북 대신 날짜 지난 달력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순원이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해준 것보다 해주지 못한 것이 많지만 순원이의 웃음만은 지켜주고 싶은 아빠. 한 개에 4원짜리 부업도 감사히 여기는 건 순원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마음은 강하고 씩씩한 태권 브이 아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속상할 뿐이다. 미안한 마음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순원이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데... 아빠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통증을 견디면서도 가족 곁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버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