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초나라 변(卞)이라는 마을에 화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형산에서 값진 옥 원석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가져도 되겠지만 충성심많은 화씨는 나라의 보물이라 생각하여 이를 당시 초나라를 다스리던 여왕厲王에게 바쳤습니다. 여왕은 재위 초기 개간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한편, 군을 훈련시켜 부국강병을 이룬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는 백성들을 향해 강압으로 일관하는 등 공포정치를 실시했던 왕이기도 합니다.
화씨는 이런 왕의 과거영광에 대한 존경의 의미일지, 아니면 공포정치를 시행하는 왕에 대한 아부일지 모르겠지만 옥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옥 원석을 감정한 궁정 세공인은 이를 쓸모없는 돌덩이라 판단했고, 화씨는 왕을 기만했다는 이유로 발뒤꿈치를 잘리는 월형이라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이후 기원전 741년, 그의 아우였던 웅철이 형이었던 여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바로 초나라 무왕입니다.
초나라 군주는 당시 자작에 불과하였으나 무왕 대에 이르러 스스로 왕을 칭합니다. 무왕은 교나라에 승리하는가 하면 근처 열국을 모아 회맹을 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약 40여년전에 여왕에게 옥을 바쳤던 화씨가 무왕에게 다시 옥을 바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궁정의 세공인들은 볼품없는 돌덩어리라 말했고 화씨는 다른쪽 뒤꿈치를 잘리게 됩니다.
이후 십여년 뒤, 무왕이 사망하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곧 초 문왕입니다. 문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이번에도 옥을 바치려고 하다가 자신의 양발 뒤꿈치가 모두 잘려 걷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합니다.그는돌을 끌어안은 채 사흘 밤낮을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를 들은 문왕이 '나라 안에 월형을 당한 이가 한 둘도 아닌데 그대는 어찌 슬퍼하는가?' 라고 묻자 화씨는 '제 발이 모두 잘려나간 것이 슬픈 것이 아니고 정직한 제가 거짓말 쟁이로 몰려 그것이 슬플 뿐입니다. ' 라고 답합니다.
문왕은 이를 듣고 다시 옥을 감정하게 하였습니다. 정밀한 세공을 거친 결과, 그것은 천하의 보옥임이 밝혀졌습니다. 문왕은 화씨에게 대부의 봉록을 주어 여생을 편히 살게 하였고 그 옥을 다듬어 초나라의 보물로 삼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옥을 둥근 도넛모양으로 세공하여 장식품으로 사용했는데 이렇게 가공한 옥을 '벽(璧)'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옥을 세공한 '벽' [출처: 위키피디아 백과사전]](https://www.casenews.co.kr/news/photo/202503/17319_38012_3427.jpeg)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그 보물을 화씨의 고운 옥이라는 뜻으로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옥은 수백년의 세월이 지나며 이리저리 옮겨지고 결국 조나라 혜문왕의 손에 갔는데 인상여가 진나라에 외교사절로 간 이야기의 주된 소재가 되었습니다.
나온 말이 '옥의 티', '하자'입니다. 이 옥덩이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면서 전국옥새로 만들어졌으며, 당나라까지 제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근 2천여년을 보물로 살았으니 가히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이 화씨지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옥덩이에 티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에서 ‘완벽(完璧)’이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초나라 왕이 보았던 것은 다듬어지지 않은 돌덩이였고, 그것을 가공할 기회를 박탈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방에 위치한 한 기업이 2006년, 에탄올을 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개발하였지만, 당시 시험평가기관은 관련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시험평가 자체를 거부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세계적으로 ESS가 주목받던 시기가 오자 기업은 다시 시험평가를 요청하였으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12년을 기다린 끝에 결국 해당 기업은 관련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지뢰 탐지 기술을 개발한 한 기업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존의 금속탐지 방식과 달리 미세한 화학적 입자를 감지해 목함 지뢰, 플라스틱 지뢰까지 탐지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었으며, 탐지 범위 또한 기존의 10cm에서 30cm로 확대되어 장병들의 안전성을 대폭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 시험평가에서는 ‘탐지 기준 10cm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비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실제 테스트를 거쳐 700억 원 규모의 선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수에서조차 채택되지 않았기에 대량 생산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고, 결국 기회를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출처: 이미지투데이]](https://www.casenews.co.kr/news/photo/202503/17319_38013_3833.jpg)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 사회가 혁신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보석으로 가공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잃게 되는 것일까요? 기업이 완벽을 향해 나아가려면, 그 기회를 허락하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경영에 있어 ‘완벽’이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은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이를 위한 시행착오를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사장된다면, 결국 우리는 가치 있는 원석을 단순한 돌덩이로 남겨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기업과 정책 결정자들은 이 점을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완벽을 거부하는 사회에서는 혁신도, 성장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원석을 보석으로 가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도전하는 기업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들어가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