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HN스포츠 애리조나(美) 이상희 기자)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이 메이저리그 최고액 감독자리에 올랐다.
미국스포츠 전문채널 ESPN 등 복수의 미국현지 언론은 11일(한국시간)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 다저스가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 4년 총액 3240만 달러(약 473억원)의 연장계약을 맺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는 연평균 8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으로 연봉기준 메이저리그 감독 중 가장 비싼 자리에 올랐다. 로버츠가 현역 은퇴 후 샌디에이고 코치로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가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오르리라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에겐 화려한 메이저리그 커리어도 없었고, 백인이나 흑인이 아닌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출신 핸디캡도 있었기 때문이다.

로버츠는 흑인인 미군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1972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여느 미군 가정의 아이들처럼 로버츠도 이삿짐을 싸고, 푸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미군의 경우 보통 2~3년 주기로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더 잦은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로버츠도 그랬다.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부대를 비롯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에 있는 여러 부대를 옮겨 다니며 ‘떠돌이’ 유년기를 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동남부 지역인 노스 캐롤라이나주는 물론 하와이에서도 거주했다.
쉼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로버츠는 고등학생이 된 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정착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야구, 농구, 풋볼 등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공군사관학교로 부터 풋볼 장학생 제안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하지만 로버트는 “야구를 하고 싶다”며 그 좋은 제안을 거절했다.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대학야구 명문 UCLA에 진학한 로버츠는 외야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그의 빠른 주력을 알아본 코치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는 1993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47라운드에서 클리브랜드의 지명을 받자 크게 실망했다. 지명순위가 거의 최하위였기 때문이다.

로버츠는 대학코치로부터 “수비와 송구를 더 가다듬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 들이고 드래프트 재수를 선택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결국 1994년 드래프트 28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의 지명을 받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프로진출 5년 만인 1999년 로버츠는 트레이드 된 클리브랜드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2001년까진 빅리그보다 마이너리그 트리플 A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을 만큼 쉬 자리를 잡지 못했다.
로버츠는 하지만 2002년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선수생활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해 총 12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7, 3홈런 34타점 45도루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빅리그 주전급 선수로 성장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도 0.718로 좋았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수가 된 로버츠는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된 2004년까지 전성기를 보냈다. 빠른 발을 이용해 매 시즌 33+ 도루도 성공했다. 특히, 보스턴 시절 월드시리즈에서 로버츠의 빠른 발을 이용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그의 도루는 매년 포스트시즌마다 회자될 만큼 임팩트가 컸다. 이 도루가 시발점이 된 보스턴은 그해 월드시리즈를 제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버츠는 이후 샌디에이고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2008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총 10년을 뛴 그는 통산 타율 0.266, 23홈런 213타점 243도루 OPS 0.708의 호성적을 남겼다.

은퇴 후 약 1년간 해설자로 야인생활을 한 로버츠는 2011년 샌디에이고 1루 주루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샌디에이고 구단에서 메이저리그 코치연수를 받았던 전준호 현 KBSN 해설위원은 MHN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로버츠 감독과 나는 ‘도루’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코치연수할 때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며 “야구에 대한 자신만의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로버츠 감독은 풍부한 선수경험과 더불어 은퇴 후에도 끊임 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다저스 감독이 된 것은 물론, 그 자리에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로버츠 감독의 지도력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지난 2016년 다저스 감독자리에 오른 그는 취임 당시부터 ‘구단 역대 첫 소수계 출신’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지휘봉을 잡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로버츠처럼 일본계 미국인, 즉 소수민족 출신이 감독자리에 오른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염려 어린 시선을 실력으로 잠재웠다. 2016년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2020년과 2024년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선수시절이었던 2004년까지 포함하면 월드시리즈 반지만 무려 3개나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까지 다저스 감독으로 9년간 롱런한 그는 851승 507패 승률 0.627의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며 메이저리그 ‘명장’ 반열에 올랐다.
“내 몸엔 일본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할 만큼 어머니 나라인 일본에 대한 애정이 큰 로버츠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여자친구와 지난 1997년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아들 콜은 대학야구를 거쳐 현재 애리조나 구단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 A 선수로 뛰고 있다.
사진=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MHN스포츠 DB